수를 기록할 때 옛날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또한 계산까지 했을까?
아라비아 숫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수를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아주 옛날에는 칼자국이나 끝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후 중국에서 한자가 들어오면서부터는 한자 숫자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덧셈과 곱셈을 한자 숫자 그대로 계산해 보세요.
삼백오십사 가 칠백구
三 百 五 十 四 加 七 百 九 354+709
이백육십팔 승 삼백육십이
二 百 六 十 八 乘 三 百 六 十 二 268x362
아라비아 숫자로 계산하기는 쉽지만, 한자 숫자로 계산하기는 무척 번거롭습니다.
왜냐하면 한자 숫자로 수를 나타낼 때는 百(백), 十(십)과 같은 자릿갑이 같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라비아 숫자로 계산할 때는 계산기가 따로 필요 없지만,
한자 숫자로는 그냥 계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수를 한자 숫자로 기록했던 옛날 사람들은 계산을 어떻게 했을까요?
오늘날의 계산기와 같은 '산대'를 이용해서 계산했는데, 한자 (算)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算(산)이 의미하는 바를 나타내면, "계산판 위에서 대나무를 다룬다."는 뜻입니다. 수의 기록은 한자 숫자로 하고, 게산은 산대로 한 것입니다.
算 = 竹 + 目 + 弄
산 대나무 모눈(계산판) 다루다
그럼 우리에게는 아라비아 숫자와 같은 것은 없었을까요?
물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 조상들의 계산 도구인 산대에 대해서 알아보고, 수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과 계산법에 대해서도 알아봅시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산대'
산대는 중국 주(周) 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때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는 주판이 사용되면서 산대가 점차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신시대 말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수학자 최석정(1646~1715)이 쓴 수학책 [구수략]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습니다.
[고대에는 대나무로 산대를 만들었으며, 그 지름은 1푼, 길이를 6촌으로 정했다.
옛 제도는 이미 쓰이지 않고 지금은 산대의 단면이 원 모양이 아니고 세모꼴이다.]
원래 단면은 원 모양이었는데 나중에 세모꼴로 바뀌었다는 말은 산대의 재료가 대나무에서 나무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대를 산목(算木)이라고도 합니다.
최석정은 이글에서 고대의 산대 길이만 말하고 있고 최석정이 살던 때의 산대 길이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약 150년 후에 최한기(1803~1879)는 [습산진벌]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산대의 길이는 2촌 5푼으로 한다(약 7.7cm). 단면은 세모꼴........]
하지만 산대의 길이가 모두 같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산대의 길이는 약 15cm이며, 6.5cm 정도의 짧은 산대도 있습니다.
형태도 세모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산대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관리들이나 귀족들이었으며, 상아나 금으로 장식을 한 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산대는 주판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숫자 계산을 위해 쓰이던 도구이다. 대나무 또는 다른 재료로 만든 막대를 일정한 방법으로 늘어놓아 숫자를 계산하는 방법, 또는 그 막대를 말한다. 산목(算木) 산책(算策), 산가지(算-)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산(算), 주(籌)라고도 한다.
[참고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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